'2008/10'에 해당되는 글 61건
- 2008/10/31 [준짱의 잇쵸스토리] 모든 것은 자기 에어리어가 있다 2 - <일본인의 인간관계>
- 2008/10/30 [준짱의 잇쵸스토리] 일본카레의 유래 (1)
- 2008/10/30 [준짱의 잇쵸스토리] 모든 것은 자기 에어리어가 있다 1 - < 카레 비벼먹기 >
- 2008/10/20 한일가라오케대회 후 뒤풀이 시간 (2)
- 2008/10/20 제6회 한일가라오케대회 그랑프리 수상자 인터뷰
앞에서 잇쵸에는 오쿠, 만나까, 곤로 이렇게 세 가지 일의 영역이 있다고 언급했었다.
이 세 가지의 일은 서로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의 생산성을 뽑아내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오쿠의 영역, 만나까의 영역, 곤로의 영역 이렇게 각기 일에 해당하는 시간적인 영역, 공간적인 영역, 행동라인과 에너지량이 섞이지 않고 분명히 나뉘어져 있었다.
다음 그림을 봐라.
왼쪽은 A 와 B가 있어서 이 둘이 겹쳐지기도 하고 충돌하기도 한다. 그러나 오른쪽은 A 와 B 는 각자 자기 영역이 확보되어 있어서 직접 겹쳐지거나 충돌할 일은 피한다.
여기서 A 와 B 는 사람이 될 수 도 있고 시간이 될 수도 공간이 될 수도 있다.
그 좁디 좁은 주방 안에서 4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그 무수한 가지 수의 일을 숨가쁘게 하면서 별 마찰없이 순조롭게 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이다.
즉, 잇쵸 안이란 정해진 공간안에서 또 정해진 시간안에서 각각의 업무가 칼 같은 매뉴얼에 따라 자기 에어리어를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에 별 마찰이 없는 것이다.
단, 그렇게 하기 위해선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상대방 에어리어에 대해 항시 인지하고 있어야 함으로 늘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가까운 옆에서 기름이 끓고 있고 날카로운 칼이 도사리고 있는 좁은 공간에서 수많은 일을 짧은 시간 안에 처리해야 하는 것이다.
이 것은 각종 상황에서 일본문화와 일본인을 이해하는 데 아주 결정적인 코드로서 도움을 주었다. 앞서 이야기한 카레와 밥을 따로 먹는 것도 그렇고 일본 음식의 특징도 그러하고, 일본문자인 히라카나 가타카나가 만들어진 배경도 그러하다. 일본문화를 형성해 온 가장 기본적인 원칙 중의 하나인 것이다.
일본사람도 마찬가지다.
일본인은 제각기 자기 에어리어가 있어서 그 것을 서로 침범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일본인들이 언제나 밝은미소와 깔끔한 매너로 역시 선진국민이다 라는 말을 하는 한국인이 있다. 물론, 그렇게 좋은 이미지를 남기기도 하지만 다른 각도에서 관찰하면 그 것은 자기 영역을 지키려는 제스처에 가깝다.
즉, 한국인은 다른 이과 뒤엉켜 살면서 약간의 무례를 주고 받을 때에 오히려 친근감과 인간미를 느낀다면, 일본인은 자기 영역을 침범 당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교제를 원하기에 항상 예의와 긴장을 조심스럽게 유지하는 것이다.
인간관계도 비슷하다. 일본인과 교제해본 사람이면 알겠지만, 일본인은 상대에게 한번 물어봐서 그 대답이 Yes 든 No 든 관계없이 바로 그 결과를 수용한다. 때를 쓰거나 억지를 부리지 않는다. 한국인 같으면 최소 몇 번은 물어 봐줘야 정을 느끼고 훈훈한 감정을 느낀다.
그러나, 일본인은 자신의 의도나 생각이 어떤 영역을 확보하고 있어서 서로 섞이기를 꺼려하고 끼어들기도 싫어한다. 일본인의 스타일은 “싫어? 알았어. 그럼 너는? “ 이런 식인데, 사실 이 말은 실지로 상대방을 수용해서라기 보다는 “너도 네 방식데로 해 나도 내 방식데로 할테니 대신 우리 서로 간섭하지 않는 선에서 뭔가를 만들어보자” 라는 거다.
즉, 상대방이 있는 그대로를 그냥 두는 것이다. 서로 상대방의 영역 안에 침범하지 않는다.
그래서 일본에는 욕이 별로 발달하지 않았다.
외국어를 배우면 보통 호기심에 그 나라의 욕을 배우고 싶어하는 편인데, 기본적인 일어회화가 조금 입에 붙을 무렵 일본 욕을 찾아 본 적이 있다. 아무리 찾아봐도 기껏해야 “ 제기랄” “ 바보자식” “머리가 돈다” 정도이다. 한국처럼 휘황찬란한 욕의 퍼레이드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물론, 일본 야쿠자의 세계에서는 심한 욕이 오고 갈지는 모르겠지만, 일본 서민들의 생활에서는 입에 잘 담지 않는 것이다.
일본에 사는 1년 동안 길거리나 어떤 장소 내부에서 일본인이 싸우는 것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기껏해야
말싸움 정도였는데 그것도 한국적인 관점에서 보면 너무나 부드러운 말싸움이었다.
그 들은 싫으면 아예 상대하지도 않고 평생 만나지도 않는다. 싸울 이유가 애초에 없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너무 냉정하게 느껴질 지 모르나, 오히려 일본으로 건너 온 한국인 중에는 오히려 적당한 무관심과 개인주의가 너무 편하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사실 내 경우도 회사를 그만 두고 일본에 갔을 때 해방감과 자유스러움을 느꼈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내 일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자체가 너무 좋았다. 남에 대한 지나친 관심과 쓸데없는 간섭은 상대방을 지치게 만들 뿐만 아니라 피해까지 줄 수 있는 법이다.
따라서, 이렇게 다른 이 두 국민이 교제를 시작할 때 당연히 어려움이 많지 않겠나?
지금이야 일본을 20년 이상 경험했기에 그러려니 하고 적정선에서 그 들과의 관계를 잘 유지할 수 있지만, 초창기에 그런 이해가 없을 때는 일본인을 사귀기가 무척 어려웠었다. 속을 도무지 알 수가 없고 같이 잘 지내다가 작은 자극에 멀리 도망가버리는 아주 예민한 고양이처럼 일본인에 대해 감을 잡기 매우 어려웠다. 이 것은 앞서 언급한 이 영역에 대한 일본 특유의 관점을 이해 못한 체 접근했던 것에 문제가 있었다.
한국식의 스스럼 없는 접근은 일본인에게 적지 않은 무례일 수가 있고 때론 상처까지 줄 수가 있다.
물론, 그들도 한국인과 교분을 쌓으려면 그 들의 관점만 내세울 것이 아니라 한국인의 정서나 가치관도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사실 처음에는 한국인이 먼저 손을 내밀고 오픈마인드로 서서히 접근하지 않으면 이 소심하고 겁이 많은 일본인은 좀처럼 마음을 열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자기를 열고 진심으로 다가섰던 한국인 쪽이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일본인 중에서 외국생활의 경험이 있는 친구가 늘어나고 일본도 글로벌화의 물결을 더 이상 무시할 수 없기에 조금씩 변하고 있다. 비교적 교제하기 쉬운 일본인은 역시 일본을 벗어나 다른 나라에서 공부하거나 살아본 적이 있는 사람이다.
외국생활을 통해서 스스로 일본적인 틀의 한계를 인식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기준과 특성을 이해하고 맞추려는 노력을 하기 마련이다. 특히, 그 외국이 만약에 한국이라면 더욱 컴뮤니케이션하기가 용이하겠지.
사실 한국에서 내가 만나는 일본친구들도 꽤 있는데 그 들은 상당수가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고, 혹 할 줄 모르더라도 한국인의 성향을 잘 이해하고 있는 친구들이다. 그 들과 만나서 보내는 시간은 편안하고 즐겁다. 왜냐하면, 한국인의 지나친 관심과 간섭도 아니고, 일본인의 냉정한 무관심과 무간섭도 아닌 적정한 선에서 과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관계성의 유쾌함을 선물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인터넷을 기반으로 PC, 모바일 등 첨단 기술을 활용한 한일간의 컴뮤니케이션 수단이 급격히 발전할 것이다. 점점 서로에 대해서 파악하게 되고 이해해감에 따라 한국인과 일본인의 경계도 조금씩 허물어가지 않을까 조심스러운 예측도 해본다.
사실 요즈음 10대, 20대들은 언어만 제외하고 보면 한국인 인지 일본인 인지 잘 구분이 안 갈 정도로 동질성이 늘어나고 있다.
아마도 10대의 한국인, 일본인의 차이보다 같은 한국인의 10대와 50대와의 간격이 훨씬 더 클 것이다.
한국인의 방식과 일본인의 방식이 적절히 균형잡힌 세련된 컴뮤니케이션 스타일이 윤곽을 드러내는 날, 한 일간의 교류는 더욱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준짱의 1분 노트>>
컴뮤니케이션에 대한 일본인의 그런 폐쇄적인 성향은 현재 일본의 발목을 잡고 있다. 세계에서 경제적으로 우위성을 확보하고는 있지만 세계인의 머리속에 일본이 글로벌 리더라는 인식은 도무지 자리를 못 잡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한국인의 시원한 개방성, 인간적인 어프로치, 정 등의 특성들이 글로벌 리더로서의 성향과 맞닿아 있다.
이 장점을 충분히 살려 하루 빨리 한국인의 개방성을 능가하는 한국 정치, 경제의 개방성을 이루어 저 넓은 미래의 신개척지에서 뛰어 놀아야 되지 않겠나?
지금은 누가 먼저 세계인의 머리와 가슴속에 새로운 깃발을 꽂느냐의 게임이다. 가능성은 열려있고 그 곳에 이르기 위한 수단 또한 값싸게 널려있다.
남은 것은 오로지 나의 선택과 집중이다.
hpFKbI24ufcwtQmEPB1L5hwybm0
'준짱의 잇쵸스토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준짱의 잇쵸스토리] 음악을 보고 듣는 한국인, 음악을 듣고 보는 일본인 (2) | 2008/11/13 |
|---|---|
| [준짱의 잇쵸스토리] 뮤지션이 요리하는 식당가 (1) | 2008/11/02 |
| [준짱의 잇쵸스토리] 모든 것은 자기 에어리어가 있다 2 - <일본인의 인간관계> (0) | 2008/10/31 |
| [준짱의 잇쵸스토리] 일본카레의 유래 (1) | 2008/10/30 |
| [준짱의 잇쵸스토리] 모든 것은 자기 에어리어가 있다 1 - < 카레 비벼먹기 > (0) | 2008/10/30 |
| [준짱의 잇쵸스토리] 돈가스 만들기와 그 유래 (0) | 2007/05/06 |
배도 고프고 정신적, 육체적 여유도 고팠던 일본에서 전쟁같았던 1년 간 유학시절.
그 때 식사는 거의 아르바이트하는 일본식당에서 해결하거나 그 외의 끼니는 거의 집에서 지은 밥과 간단한 반찬으로 때우곤 했다.
생활비는 물론이고 학비까지 모아야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일본에 있을 때 다양한 음식문화를 접해보지
못했었다. 기껏해서 큰 마음먹고 외식해봐야 요시노야에서 300엔 짜리 규동을 벗어나질 못했다.
거기다 몇십엔 추가해서 날달걀하나 규동위에 얹으면 그 것으로 감지덕지하던 때였다.
하루에 2~3개 씩 아르바이트를 했기에 시부야, 신주쿠, 이케부쿠로 등 번화가를 헤집고 다녔다.
그러다보면 전 세계로부터 온 화려하고 개성있는 레스토랑과 식당들이 곳곳에 자리잡고 점심시간, 혹은 퇴근 후 일본인들을 유혹하고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그 때 눈에 많이 띄었던 종목 중 하나가 카레전문점이었다. 어딜가나 있었다. 번화가에도 작은 동네 모퉁이에도..
일본인들은 정말 카레를 좋아한다.
심지어 잇쵸에서도 팔고 있던 카레우동과 소바 외에도 카레수프, 카레빵, 카레만두, 카레오믈렛 등 카레를 소스로 한 다양한 먹거리가 탄생했다. 일반 밥이 들어간 카레의 종류도 무궁무진해서 인도식 카레는 물론이고, 구라파식 카레, 동남아시아식 카레, 독특하게 초콜릿, 커피 등의 향을 넣은 카레도 있다.
따라서 이렇듯 다양한 아이디어와 장인정신을 갖춘 카레전문점이 일본에는 엄청나게 많고, 일본 샐러리맨들이 점심시간에 회사에서 나와 한 끼를 해결할 때 손쉽게 선택하는 대표적인 메뉴 중 하나다.
일본인은 평균적으로 일주일에 한 번은 카레를 먹으러 가고 특히, 여름에는 일주일에 두 번 이상은 먹으러 간다고 한다. 지금도 일본에서는 새로운 카레전문점이 태어나고, 식품회사에서 매년 수많은 종류의 카레를 출시하며 치열한 경쟁하고 있다.
어떻게 인도에서 태어난 카레가 일본에 와서 비로소 활짝 만개를 하게 되었을 까?
그 유래를 들여다보면 재미있다.
카레가 일본 서민의 가정에서 만들어지게 된 것은 러일전쟁이 그 시발점이 되었다.
당시 한반도와 만주를 지배하기 위해 서로 대립하고 있던 일본과 러시아는 1904년 2월 8일에 러일 전쟁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1905년 9월 5일 포츠머스 조약 이 체결되어 일본이 승리했다.
포츠머스조약
1905년에 미국 포츠머스에서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의 중재로 맺은 러일 전쟁의 강화 조약. 한국에 대한 일본의 우선권, 관동주의 조차(租借) 따위를 정하였다.
전쟁 중일 때는 병사에게 제공하는 식단이 매우 중요하다. 먹을 것이 부실하거나 열악하면 그 군대의 사기는 뻔한 것이 아니겠는 가? 우선 장기간 보존이 가능하고 한 번에 대량으로 간단하게 조리할 수 있는 것이 필요하다.
그 당시 그 조건에 잘 부합되는 것이 바로 카레였다.
이 때 카레는 군용식품으로서는 최적임을 인정받아 육군, 해군 모두 식단으로 채택되었다. 해군으로부터 카레먹는 습관은 현재의 자위대에도 인계되고 있고 매주 금요일이 “카레의 날”이라고 한다.
전쟁이 끝나자 일본군의 병사들은 자국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잊혀질 뻔 했던 군대에서 카레 만드는 방법을 기억해내고 가족에게 카레를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일반 가정에서도 카레가 만들어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카레로 만들어지기까지는 메이지유신 때부터 시작되어 거의 100년이 걸렸다.
일본 최초의 인스턴트 카레가 발매가 된 것은 1906년 이었고 1912년이 되서야 비로소 현재와 같은 형식인 양파, 감자, 당근과 같은 야채도 일반적으로 카레에 넣게 되었다. 그 이후 1927년에는 카레빵까지 등장하게 된다.
이렇듯 일본은 지금까지 카레에 관한 한 전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장기간의 역사동안 발전을 해와서 독자적인 카레문화를 꽃피웠다. 지금의 한국 카레는 인도로부터가 아닌 일본식 카레에서 모델을 가져왔다고 보면 된다.
앞으로 우리 한국도 일본식 카레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한국적 맛과 향을 느낄 수 있는 “김치표 카레문화”를 꽃피웠으면 하는 바램이다.
'준짱의 잇쵸스토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준짱의 잇쵸스토리] 뮤지션이 요리하는 식당가 (1) | 2008/11/02 |
|---|---|
| [준짱의 잇쵸스토리] 모든 것은 자기 에어리어가 있다 2 - <일본인의 인간관계> (0) | 2008/10/31 |
| [준짱의 잇쵸스토리] 일본카레의 유래 (1) | 2008/10/30 |
| [준짱의 잇쵸스토리] 모든 것은 자기 에어리어가 있다 1 - < 카레 비벼먹기 > (0) | 2008/10/30 |
| [준짱의 잇쵸스토리] 돈가스 만들기와 그 유래 (0) | 2007/05/06 |
| [준짱의 잇쵸스토리] 다양한 음악이 숨쉬는 곳.. 잇쵸 그리고 보스톤 (0) | 2007/04/26 |
나는 카레를 좋아한다.
달짝지근하면서 매콤한 맛이 좋고, 고기와 야채가 적절히 균형을 맞춘 영양식단이기에 좋고 각종 야채가 들어간 알록달록한 색깔도 눈을 즐겁게 한다.
카레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엄마표 카레라이스다.
당시 난 카레하면 인도에서 온 음식으로만 알았다. 하지만, 회사있을 때 신입사원연수로 말레이지아에 가서 진짜 원조 인도카레를 맛을 본 적이 있다. 너무 달랐다. 인도카레는 내가 먹던 카레와는 달리 야채도 별로 없었고 맛도 달콤하기 보다는 인도카레 특유의 향과 함께 톡 쏘는 매운 맛이 강렬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가 먹는 카레 형태는 일본에서 만들어진 것이고 일본이 전 세계 카레 소비량의 2위인 나라인 것을 알고 매우 놀랐다.
잇쵸에서도 카레를 팔았는데, 베지터블카레(보통카레), 비프(소고기)카레, 포크(돼지고기)카레, 치킨카레, 쉬림프(새우)카레외에도 카레우동도 팔았다. 잇쵸에 출근하면 아침마다 제일 먼저 하는 일중 하나가 카레소스를 만드는 일이었다.
일단 소스를 만들어놓으면 밥에다 소스만 얹으면 되니까 만들기도 간단하고 먹기도 간편하여 잇쵸에서 잘 팔리는 메뉴 중 하나였다.
하지만, 난 잇쵸에서 식사로 별로 카레를 선택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먹는 카레맛과는 달리 너무 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일을 마치고 청소를 다한 후에 뒤늦은 식사를 할 때였다.
그 날은 주인장도 함께 하여 본인이 직접 잇쵸멤버들의 식사를 만들어 주었다. 만들어 준다는 것이 뭐 그냥 잇쵸의 메뉴중 하나를 만들어 주는 것이지만..
그런데 하필이면 카레를 만들어 준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영양보충이 어려운 고학의 유학생활에서 돈안들이고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어디냐 하고 곧바로 긍정모드로 전환하고 건네는 카레를 받아들었다.
내 입맛에는 너무 달기에 꿩대신 닭이라고 옆에 있는 도반장(중국식 고추장)를 집어와 듬뿍 뿌리고 마구 비비기 시작했다.
아마도 한국인이라면 열에 아홉은 그러지 않았을 까?
그런데 이 행동이 주인장을 포함 잇쵸 멤버들에게는 다소 충격이었나 보다. 부들 눈을 휘둥그레 뜨며 일제히 나에게 물었다.
“준상, 괜찮아요?” 놀란 표정으로 나를 보면서 아미짱이 묻는다.
옆에서 곧 이어서 카나메군이 장난끼 있게 웃으며 “스게!(굉장한데)~~” 한마디 거든다. 주인장은 다소 거슴치레하게 눈을 가늘게 뜨고 “그러면 카레맛이 나나?” 라고 묻는다.
난 그들이 왜 놀란 가 했더니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도반장을 듬뿍친데 놀랐고 둘째, 마구 비벼먹는 데 놀랐다.
한국인은 보통 비벼서 먹는다 비빔밥도 그러하지만 그 외에도 뭔가 밥위에 다른 소스나 재료가 있으면 십중팔구 섞어서 먹는다. 반면 일본인은 비벼먹지 않는다. 따로 따로 조금씩 팥빙수, 카레, 심지어 비빔밥도 비벼먹지 않고 채소따로 밥따로 먹는 친구들이 있다.
그리고 연이어 주인장이 “그렇게 매운 고추로 범벅해서 먹으면 매운 맛에 모든 맛이 감추어져서 제대로 그 음식의 맛을 느낄 수 있는가? “ 라고 질문을 추가한다. 별 의식하지않고 내 입맛에는 너무 달아서 그렇게 먹었던 것인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나름 그의 말도 납득이 갔다.
주인장은 일본요리는 원래 소재의 맛을 느끼는 것을 중요시 한다고 했다.
다시 말해 "재료를 뒤섞지 않는 것”이다.
카레와 밥도 카레의 맛을 오롯히 느끼고 밥맛도 느끼면서 먹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밀가루로 튀김옷을 입혀서 각 재료의 모양이 보이게 하는 뎀뿌라가 그렇고, 밥은 밥맛데로 날생선은 날생선데로 맛을 느끼며 먹는 스시처럼 그래야 각 재료의 맛과 형태를 제대로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튼 음식의 먹는 방법에서도 이렇게 한국과 일본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남을 보면서 새삼 흥미로움을 느꼈다.
일본요리에서는 가능한 식품에 손대야 할 기술은 최소한으로 하고 되도록 식품을 자연에 가까운 상태로 먹어야 한다는 것,
즉, “조리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조리의 이상” 임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뭔가 철학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듯 했다. 인공적인 인간의 행위로서 만들어진 것이 아닌 자연 그대로를 먹겠다는 것. 그래서 일본식을 건강식이라고도 하고 장수하는 일본인이 많은가 보다.
하지만, 나는 비빕밥이나 해물탕처럼 고추장을 쳐서 비벼먹거나 갖은 양념을 넣고 푹꿇여서 우러나온 국물을 먹는 것을 선호하는 민족의 후손 아닌가.
그 이후 난 어김없이 가츠돈을 먹을 때나 카레를 먹을 때나 늘 도반장을 달고 살았다. 한국의 고추장에는 전혀 비길바 못 되는 맛이었지만, 그나마 그 것이라도 있어서 다행이었다. 한 번은 나도 주인장이 얘기한 것처럼 도반장없이 나름 그 음식의 원래 재료맛과 소스맛을 음미하면서 먹으려고 노력해보았다. 처음엔 싱거워서 먹기 힘들더니 몇번 지속하자 나름의 향과 맛이 느껴지는 듯 했다.
하지만, 이 번에는 그 들이 몇 번 나를 따라서 도반장을 넣어먹기 시작하더니 나중엔 중독이 되어서 그 중 몇몇 친구들은 도반장없이는 못먹는 정도가 되었었다. ^^
준짱의 1분노트>>
이 경험이 내 머리 속에 각인시킨 것은 “일본인은 뒤섞지 않는다” 란 것이었다.
또 이것은 내가 그 동안 경험했던 일본인의 업무스타일, 사고방식, 행동양식 그리고 인간관계를 이해하게 만드는 핵심 키워드로 다가왔다.
'준짱의 잇쵸스토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준짱의 잇쵸스토리] 모든 것은 자기 에어리어가 있다 2 - <일본인의 인간관계> (0) | 2008/10/31 |
|---|---|
| [준짱의 잇쵸스토리] 일본카레의 유래 (1) | 2008/10/30 |
| [준짱의 잇쵸스토리] 모든 것은 자기 에어리어가 있다 1 - < 카레 비벼먹기 > (0) | 2008/10/30 |
| [준짱의 잇쵸스토리] 돈가스 만들기와 그 유래 (0) | 2007/05/06 |
| [준짱의 잇쵸스토리] 다양한 음악이 숨쉬는 곳.. 잇쵸 그리고 보스톤 (0) | 2007/04/26 |
| [준짱의 잇쵸스토리] 첫 월급날이 왔다! (0) | 2007/04/23 |
역시 모든 이벤트뒤에 이런 뒷풀이 시간이 없다면 앙꼬없는 진빵이쥐~~?
모두들 화기애애하게 담소를 나누고 있다.
두 사람 중 오른쪽은 제 3 회 한일가라오케대회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한 전태형님. 그리고
왼쪽은 한일 한마당 축제때 운영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이마니시상, 이번 가라오케대회에 출전했다.
그 외 이번 가라오케 출연자들이 즐거운 뒤풀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전태형님은 일본에서 주최한 국제일본가요대상 전국대회에도 출전해서 그랑프리를 수상한 출중한
가창력의 소유자다. 현재 솔로음반을 내고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마무리를 노래방에서 "서울 찬가"로 멋있게 장식했다. 행사할 때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한일
스탭진들..
이들이 노래부르는 것을 보니.. 대회 때 노래부르고 싶어 얼마나 몸이 근질근질 했을까?
'한일문화교류'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한일가라오케대회 후 뒤풀이 시간 (2) | 2008/10/20 |
|---|---|
| 제6회 한일가라오케대회 그랑프리 수상자 인터뷰 (0) | 2008/10/20 |
| 한일가라오케 수상자 발표 (0) | 2008/10/20 |
| 심사중 (0) | 2008/10/20 |
| 일본의 꼬마"마야" 등장!! - 전통창법에서 락 스타일까지 (0) | 2008/10/20 |
| 로맨틱하게.. 열정적으로.. (0) | 2008/10/20 |
그랑프리를 수상한 사토 에리(佐藤衣莉)짱. 13세 소녀로 어머니가 한국인이라고 한다.
어쩐지 노래부를 때 한국말 발음이 매우 정확해서 혹시 재일교포가 아닌가 생각했었다.
노래부르는 스타일이 일본인이 부르는 창법이 아닌 내지르는 전형적인 한국인의 창법이었다.
곡 선곡 또한 역시 마야의 "진달래꽃"을 선택해서 일본인으로서 소화하기 힘든 노래를 멋지게
보여줌으로서 심사위원으로부터 점수를 많이 땄다.
이 소녀가 수상함으로써 6회에 걸쳐 진행된 한일가라오케대회에서 최초로 일본인의 그랑프리가
탄생했다. 사실 그 전까지만해도 참가하는 한국인과 일본인의 성량과 노래 실력 차이가 너무 나서
한쪽으로 너무 치우친 듯한 인상이 많았다. 그러나 올해부터는 참가하는 일본인의 실력이 부쩍
늘어서 한국인과 일본인의 차이가 거의 나지 않았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나이가 어릴수록 한국인인지 일본인인지 차이가 희석되어간다는 점이다.
감정을 삭히는 듯한 일본적인 창법과 분위기를 멋지게 소화하는 한국인 출연자도 있었고,
직접적으로 내지르는 듯한 한국적인 창법과 필링을 완벽히 소화하는 일본인 출연자도 있었다.
서서히 꼬마 코페니언들이 자라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들이 쑥쑥 자라서 한일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오가며 각기 분야에서 새로운 가치관, 라이프스타일,
뉴비즈니스 등을 창조해나갈 날이 곧 오게 되리라!!
그 때에는 한국과 일본은 멋진 파트너쉽을 만들어 아시아, 아니 더 나아가 전 세계를 호령하게 될 것임을
굳게 믿는 바이다.
한일 출연자분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한일문화교류'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한일가라오케대회 후 뒤풀이 시간 (2) | 2008/10/20 |
|---|---|
| 제6회 한일가라오케대회 그랑프리 수상자 인터뷰 (0) | 2008/10/20 |
| 한일가라오케 수상자 발표 (0) | 2008/10/20 |
| 심사중 (0) | 2008/10/20 |
| 일본의 꼬마"마야" 등장!! - 전통창법에서 락 스타일까지 (0) | 2008/10/20 |
| 로맨틱하게.. 열정적으로.. (0) | 2008/10/20 |



Prev
Rss Fe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