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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16 11:52

[준짱의 잇쵸스토리] ITTYO PEOPLE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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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지 역시 내 또래였다.  교토 출신으로 난 그를 교토 신사라고 불렀다. 분위기가 고풍스러운 교토처럼 그는 매우 점잖고 젠틀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미국으로 유학오기 전 영어공부를 위해 영어학원을 다녔는데 그 때 가르쳤던 선생님이었던 연상녀 유키꼬와 6개월 만에 결혼하여 같이 미국으로 왔다.  아주 매너좋고 사람좋은 친구이며 나와 친했다.  가끔 나를 초대해서 유키꼬가 새롭게 배워서 만들어주는 한국요리를 함께 먹기도 했다. 

그는 원래는 경영학도였는데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어느 정도 하다가 재즈를 하고자 건너왔다.  악기는 기타이고 취미가 독특한데 이소룡을 매우 좋아한다.  그에 관련한 비디오, , 심지어 쌍절봉까지 가지고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소룡의 절권도를 연구하면 자신의 연주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고 했다
.

 

 

 


유키꼬.  에이지의 부인으로 일본에서 태어났으나 대기업 간부였던 아버지의 캐나다지사 파견으로 중학교때 건너가서 대학까지 나왔다.  뱅쿠버에서 죽 살았으며 대학졸업 후 일본에 돌아와 영어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자기 반 학생이었던 에이지와 사랑에 빠져 6개월만에 결혼하고 미국으로 왔다.  한국인이 경영하는 레스토랑에서 캐쉬어로 일하고 틈틈히 천연비누도 만들어 팔 정도로 가냘프고 예쁜 외모와는 다르게 생활력이 강했다. 

한국식당의 주방장으로부터 한국요리를 배워 만들기를 즐겨 했다.  가끔식은
나를 초대하여 맛이 어떠냐고 묻곤 했다.  맛은 물론 좋았지~!

고양이를 무척 좋아해서 타오라는 이름의 고양이를 자식처럼 여겼다.
 

 








 


에미꼬는 30대 중반인 이혼녀였다 

얌전하고 단아한 느낌을 주었던 그녀는 작곡을 전공하러 미국에 왔다.
남편과 이혼 후 새로운 인생의 방향을 찾고자 평소 하고 싶었던 음악을 위해서 유학을 왔다. 

그녀는 매우 공손하고 예의 발랐다.   자기 아버지가 라면집을 운영하고 있다며 라면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앞으로 음대를 졸업한 후 일본에서 돌아가 음악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려는 꿈을 가지고 있다.

 










중국 산뚱성 출신의 중국인이다. 이름이 .  잇쵸멤버중 제일 나이가 많은 40세였고 모두 우상이라고 불렀다. 

잇쵸에서 일본인이 아닌 국적으로 나 다음으로 일을 시작한 중국인. 일본에서 유학을 했을 때 일본어를 배우고 그 때 중국인 아내를 만나 결혼해서 미국으로 왔다.   일본어가 서툴러서 듣기나 말하기에 조금 문제가 있었다.   일본에서 나온 학교를 물었으나 전문학교라고 이야기하고 더 이상의 내용은 기피했다.  

일본에서 수년 간 아주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하는 걸보니 아마 학교는 등록만 해놓고 주로 돈벌이에 치중했던 것 같다 장사도 한 적이 있다고 했다그렇게 일본에서 두 부부가 고생하며 벌어서 미국으로 정착하러 왔다.


그러나, 일본어발음시에  심한 중국식 액센트가 들어가서 처음엔 잇쵸 멤버들이 잘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특유의 낙천적인 유머감각과 주인장도 놀라는 성실함으로 커버해서 차츰 잇쵸의 멤버가 되어갔다. 

하지만, 잇쵸에서 1년 이상은 일할 줄 알았던 그가 별안간 그만두게 된다.   거기엔 그런 특별한 이유가 있을 줄이야..  나중에 공개하겠다.  기대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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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26 14:29

[준짱의 잇쵸스토리] ITTYO PEOPLE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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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

 



잇쵸의 사모님이라 불리우는 주인장의 부인. 30대 후반으로 몸이 좀 약한 편이고 순박하고 인정이 있다.  결혼 후 남편인 아츠시상을 따라 미국에서의 행복한 삶을 꿈꾸며 왔다.  남편이 공부를 접고 잇쵸를 차리자 함께 운영하며 도왔다. 

몸이 약해서 병원 치레를 자주 하는 편이었다. 잇쵸에는 한달에 1~2번 정도 나왔고, 거의 경영에는 참여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중에 남편으로부터 이혼당한 뒤 위자료대신으로 가게 운영권을 넘겨 받고 본격적으로 잇쵸 일에 뛰어들게 된다.

 

 







 

히로꼬

 

 



20
대 초반 가수지망생으로 잇쵸에서 제일 예뻤다,  그냥 미국을 동경해서 건너왔다.  어학연수 후 그냥 불법체류하고 있다. 잇쵸에서 1년 정도 일을 해왔고 배우 지망생인 옆 식당 일본남자와 동거하고 있었다.


일본에 돌아가서 데뷔할 데모 테이프를 만들어 가며  보스톤 내 작은 클럽에서 간간히 노래하고 있었다.


히로시마 출신으로 도쿄 표준어밖에 몰랐던 내게 간혹 히로시마 사투리의 재밌는 표현을 가르쳐주곤 했다.

 





 

리에

 


20
, 카나메와 동갑으로 도쿄출신으로 전형적인 일본 여고생 날라리였다. 어떤 이유(?)로 고등학교를 중도하차해서 클럽에서 노는 것으로 소일하다 미국으로 어학연수왔다.

영어도 못하면서 미국에 온 지 3개월만에 흑인남자친구를 만드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그 들은 곧 동거에 들어갔고 결혼까지 하려 한다. 

거침없는 입담과 왈가닥 같은 성격은 나중에 코코상과 상당한 마찰을 불러 일으켰지만, 다른 잇쵸멤버들은 그런 그녀의 활달한 성격을 좋아했다. 
카나메에 버금가는 잇쵸의 뉴스메이커였다
.  

나이답지않게 파란만장하게 살아온 그녀로부터 간혹 듣게 되는 자극적인 자기 경험담도 잇쵸에서 일하는 또 다른 쏠쏠한 재미중 하나였다.

차차 공개하겠다.   기대하시라.^^

 

 



켄타로


 

조그맣고 땅달한 친구였는데 일본의 명문 게이오대학을 나왔다.  보기에도 비범하게 공부를 잘하게 생겼으나 본인은 록기타리스트 겸 싱어를 자처했다. 

일본에서 대학 졸업 후 석사과정을 밟으러 미국에 왔다.  공부와 음악사이의 갈등 속에 어렵게 음악을 병행해오다가 결국 미국에 와서 만난 일본여자친구와 결혼을 하고 음악은 취미로 남게 되었다
. 

내가 신참으로 잇쵸에 들어왔을 때 그는 이번 잇쵸에서 2년이나 일한 배테랑이었다.  나와 비슷한 또래이기도 해서 대화를 꽤 나누었으나 명문대 출신이어서 그런지 매우 프라이드가 강하고 쉽게 말을 걸 수 있는 타입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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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19 14:33

[준짱의 잇쵸스토리] ITTYO PEOPLE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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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후미

가즈오와 같이 나와 많은 시간을 함께 했던 요꼬하마 출신의 친구다.  
일본의 명문 게이오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누구나 부러워하는 니케이 신문사에서 6년동안  경제부 기자로 일했다
.

이 친구 역시 재즈에 심취해 퇴근 후 짬짬히 클럽에서 연주활동을 하다가 회사를 그만두고 미국에 왔다.   이 친구와는 유명한 재즈뮤지션인 칙코리아 공연을 보러갔다가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그 후 수개월 후 잇쵸에 들어와서 친해졌다.
 

적지않은 나이에 음악을 하겠다고 대기업을 박차고 나온 것부터 시작해 나와 코드가 비슷한 점이 꽤 있었다.  비사교적이고 조용한 보통 일본인과는 달리 매우 활달하고 유머기질이 넘쳐흐르는 친구였다.  

함께 일하면 이 친구의 유머로 시간가는 줄
몰랐다.   라틴계 음악과 패션 등 라틴문화에 매우 심취해 있었다.   가끔, 잇쵸일이 끝나고 맥주캔을 사들고 그의 집에 놀러가곤 했다.  비록, 낡고 비좁은 방안이었지만 라틴음악을 틀어놓고 맥주를 마시며 그와 음악이야기를 하면 마치 야자수 밑에서 대화를 나누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했다.

몇 년 전 내가 기획한 공연의 하나로 EBS-Space 공감에 그가 베이스를 연주하던 밴드를 출연시켰다.  궁금하면 EBS 공감사이트
(www.ebs-space.co.kr) 에 가서 연주를 감상해보시라.  밴드이름은멜팅팟


 

 

 

요시꼬

 


일본 히로시마에서 고등학교졸업 후 OL로 수년간 근무하다가 무료한 생활에 지루함을 느끼고 뭔가 새로운 경험을 위해 미국으로 왔다
. 

말수는 상당히 적었고 쌔침떼기 스타일이었다. 꽤 미인인 편이었고 볼륨있는 몸매에 섹시한 느낌을 주었다. 

주인장이 보통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일하러 나왔는데 그 때는 여김없이 항상 요시꼬가 배정되어 있었다.


잇쵸멤버들 사이에서는 그녀와 주인장이 사귀고 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과연 진실은 ..?   기대하시라^^

 

 







요꼬

 


30대 초반 주부다.  일본에 파견되어 일하러 온 백인남자와 사랑에 빠져
결혼, 함께 미국으로 왔다.  잇쵸에서 일하는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익숙치 않은 타국에서 혼자있기 외로워 일본사람들과 말벗을 하기 위해서였다.  

잇쵸에 새로운 멤버가 들어올 때마다 자기는 미국에 어학연수와서 남자만난 것이 아니고 일본에 있을 때 일관계로 남편을 만나서 결혼해서 미국으로 왔다고 유독 강조하곤 했었다.  어학연수와서 백인남자, 흑인남자라면 사죽을 못쓰는 일본여자얘들을
별로 탐탁치않게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잇쵸에 갓 들어왔을 때 함께 일했지만 일반 아르바이트생보다는 한단계 높은 매니저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자동차오타쿠,   자동차이야기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20대 초반 자동차광이다.  고베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미국으로 유학을 왔다. 

중학교 때부터 자동차에 미쳐서 자동차관련 잡지, 미니어쳐, , 영화 등 사모으지 않은 것이 없다.   나름데로 전 세계의 자동차를 분석하고 연구해오고 있다

 
미국에서 방송저널리즘관련 공부를 마친 후 일본에 가서 자동차 전문 저널리스트가 되고자 하는 꿈이 있다  

그리고, 아시아계 여자중에서 한국여자를 제일 좋아하지만 아직까지 사귀어 보지 못하고 옆일본식당에서 일하는 일본인 여자친구와 교제 중이다  

카나메와는 죽이 잘 맞아 친형제처럼 지냈고 그 둘이 틈날 때마다 한국에 관해 
많은 것을 물어 오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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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15 20:47

[준짱의 잇쵸스토리] ITTYO PEOPLE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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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함께 투입된 ITTYO PEOPLE

 

곤로 : 토모키군    만나까 : 노리꼬상   오쿠 : 카나메군   

웨이트레스 & 캐쉬어 : 아미    신입 : JUN

 

 

아미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미짱은 내가 잇쵸에 첫 출근했을 때 함박꽃같이 활짝 웃으며 날 맞이해주었다. 

똑소리나는 21세 대학생으로 방송PD 지망생이었다.  보스톤에 있는 대학의 방송컴뮤니케이션관련 학과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홋카이도출신으로 시골에서 자라서 그런지 일본인치고는 인정이 있고 순박했다.   일도 야무지게 잘하고 나이에 비해 책임감도 아주 강해 주인장의 총애와 동료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아주 예쁘고 귀여운 순진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 의외로 미국 유학기간내내  일본인 남자친구를 갈아치우며 동거중이었다.   앞으로의 꿈은 미국에서 방송미디어관련 공부를 마친 후 일본엔터테인먼트회사에 입사해 실력을 인정받는 프로듀서가 되는것이다.   취미는 가라오케가기.

 


 


카나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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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나메군은 도쿄출신으로 전형적인 20살의 일본남자이다.   고등학교 막 졸업하자마자 미국유학을 왔다. 

아직 나이가 어리고 혈기왕성한 만큼 돌발적인 발설과 예측불허의 행동으로 잇쵸의 괴짜로 통했다.   꿈은 돈많이 버는 사업가지만 구체적으로 아직 무엇을 해야 할 지 모른다. 일단은 영어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부모가 보내서 미국에 왔다.  

 

미국 땅에 도착한지 1년이 넘었으나 아직 영어는 잘 안되고 해서 주로 자기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일본친구와 놀거나 일본식당에서 일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처음엔 약간 나를 어려워했지만  내 교육을 맡으면서 곧 친해져서 나에게 일본의 성문화(?)에 대해서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노리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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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만나까를 맡은 노리꼬상은 30살의 가정주부였다.  어학연수로 미국에 왔다가 백인남자를 만나 결혼에 꼴인,  남자아이 1명을 낳았다.   아줌마의 억척스러움을 가지고 있어서 궂은 일도 마다않고 먼저 나서서 하는 스타일이었다.   게다가 약간 수다스러운 면도 있어서 분위기 메이커였다.   잇쵸에서 함께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았다.     잇쵸일이 워낙 고되다보니까 예쁜 여자아이보다는 자기 몫이상 일을 척척 해내고 분위기도 밝게 띄울 수 있는 사람이 인기있는 것은 당연했다.

 

간혹 남편이 아이와 함께 잇쵸에 와서 노리꼬상을 데리고 가곤 했다.  155cm 정도의 노리꼬와 190cm 인 그녀의 남편이 함께 걸을 땐 묘한 대조를 이루었다.       이 부부를 볼 때마다 노리꼬상이 그다지 뚱뚱한 편은 아닌 데도  자꾸 옛날 채플린의 흑백영화시절 자주 등장했던 홀쭉이와 뚱뚱이가 떠올랐다.


그녀는 틈이 나면 나에게도 이것 저것 한국에 대해 물어보거나,  일본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해주며 때론 자기 시부모 흉을 보기도 했다.^^

 

 

토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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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로를 맡은 토모키군은 잇쵸에서는 현재 최고 베테랑으로 통한다.  

지금까지 2년 반동안 잇쵸에서 일해왔다. 아츠시상의 신임을 단단히 얻고 있다.   26세인 나이에 비해서 매우 성숙한 편이어서 왠만해서는 화를 내거나 놀라거나 하는 것을 거의 보지 못했다.   늘 사람좋은 미소와 여유있는 모습으로 잇쵸의 일을 리드해 나갔다.

 

그는 보기드물게 외국에 파견된 일본 대기업 지사장을 아버지로 두어서 말레이지아에서 자랐다.  ,고등학교과정을 말레이지아 국제학교에서 이수하고 바로 미국으로 유학을 왔다. 그래서 그런지 전형적인 일본인스타일은 아니었고 개방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다니고 있었던 음악학교를 이미 졸업하고 보스톤에서 체류하면서 일본음악계 데뷔준비를 하고 있었다.   앞으로 곧 등장할 가수지망생인 히로꼬상과 콤비가 되어 데모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의 꿈은 일본의 유명 작곡가가 되는 것.   악기는 테너 색소폰을 연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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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15 20:43

[준짱의 잇쵸스토리] ITTYO PEOPLE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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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문화를 공부하려고 할 때에 그 나라 유적지를 본다던가, 그 나라관련 책을 읽는다던가 하는 많은 방법들이 있겠지만,   나는 무엇보다 그 나라 사람과 만나서 대화를 나누거나 함께 생활하는 것을 제일 으뜸으로 친다.

 

따라서 어떤 나라에 여행을 간다 해도 그 나라에 유적지에서 사진을 찍는다든지 하는 것보다 가능한 그 나라 젊은이들이 모여있는 곳 혹은 시장골목, 번화가 등 사람냄새가 나는 곳을 찾아가서 현지 사람들과 접촉을 시도하는 편이다. 

 

처음 만났어도 적극적으로 다가가 나를 소개하고 가능하면 그 들과 술마시고 함께 이야기하고 사진찍고 하는 것을 즐긴다.    만약, 라틴계나라에 가면 그 나라 유적지보다는 차라리 살사바에 가서 그들과 함께 춤추고 술마시고 이야기할 것이다.

 

지금의 그 사람은 몇 백년의 그 나라 역사가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문화의 응축된 결과물이다.  생각, , 행동, 심지어 외모에서까지 그 민족, 나라의 모든 것이 스며들어 있다.

 

나는 잇쵸에서 일하면서 50명에 가까운 일본인을 만났다.  그 들을 통해서 일본에 대해 많은 것을 느끼고 깨달을 수 있었다.

 

따라서 그 들의 각양각색 인생스토리를 묵과하기에는 일본에 대해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커다란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기에 잇쵸 멤버들을 소개할까 한다.  워낙 많기에 일단 스토리가 전개됨에 따라 등장하는 인물을 중심으로 소개하겠다.



 

가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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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쵸를 내게 소개해주었던 가즈오는 내가 미국유학시절을 통틀어서 가장 친하게 지냈던 친구다.  

오사카출신으로 원래는 전산관련회사에서 컴퓨터프로그래머로 일했다.  그러다 뒤늦게 재즈에 빠져 퇴근 후 음악학원에 다니며 더블베이스 (재즈)를 배웠다.   그 후 밤에 재즈클럽에서 재즈베이시스트로 활용하다가 재즈의 본고장 미국에서 제대로 공부를 하고 싶어 회사를 그만두고 유학왔다.

 

나와는 학교 기숙사에 있을 때 만났다.  나와 나이도 비슷하고 오사카출신답게 잔정이 많고 낙천적인 친구여서 매우 친했다. 

 

가끔 이 친구는 나를 초대해서 자기 특기인 스파게티를 만들어 주곤 했다.  내 유학생활은 학교공부와 잇쵸 아르바이트 일색이어서 무척 빡빡했다.   짬짬히 그와 함께 전설의 재즈아티스트 공연을 보러가거나 그가 만든 스파게티를 안주삼아 맥주를 마시며 음악이야기를 하곤 했다.  특히, 칙칙하지만 그와 함께 당시 대히트쳤던 영화타이타닉을 본 기억이 새롭다.  



타이타닉이 가라앉는 장면에서 악사들이 탈출할 생각을 하지않고 계속 음악을 연주하며 죽음을 맞이하는 씬이 나온다.

 

그 때 누가 볼새라 찔끔 흘린 눈물을 닦던  가즈오의 옆모습이 아직 눈가에 생생하다.

 


 


주인장 아츠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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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장인 아츠시상은 대학 캠퍼스커플이었던 코코상과 결혼해서 20대중반의 나이에
미국으로 왔다
.    

원래는 건축가지망생으로 공부를 하기위해 왔지만 차츰 마음이 바뀌어 부모에게서
지원받은 돈으로 잇쵸를 차렸다
.  

 

잇쵸가 비교적 장사가 잘 되어서 넓은 정원이 딸린 근사한 저택도 구입하고 고가의 차도 소유하고 있었다.   특히, 와인마니아여서 집 지하창고에는 와인저장소를 만들어놓고 가끔 와인파티를 즐긴다.   

 

잇쵸멤버들도 초대해서 단 한 번 그의 집에서 파티를 한 적이 있는데 가보고 약간은
놀랬었다
.

그는 그저 보스톤에 있는 작은 식당의 주인에 불과했지만,  그의 저택은 실로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근사한 포스를 느끼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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