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당시 한국에서의 대기업 직장 생활에 염증을 내고 있었다.
회사야 지금은 초일류기업이 된 든든한 회사였 지만 원래 음악에의 꿈이 있었던지라 기술부 엔지니어로 취직했던 회사생활은 나에게 숨막히고 답답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난 대학 4학년 때 퓨젼재즈계 그룹으로 앨범을 냈지만 소위 뜨지 못하고 졸업 후 취직을 했었다.
그 회사에 입사한 이유는 소위 “7-4제”라하여 당시 7시 출근 4시 퇴근이라는 환상적인 조건 때문이었다. 그래서 원래 의도했던 것은 퇴근 후 음악활동을 하려는 단순하고 순진한 생각이었다. 집안에서 내게 대한 바램도 무시할 수 없고 나의 꿈 또한 포기할 수 없었던 당시로는 내가 찾은 유일한 합일점이었다.
그러나..
세상일이란 것이 어디 뜻데로 쉽게 가더냐?
실지 입사하고 보니 출근시간은 맞았지만 퇴근시간은 규정된7시를 훨씬 초월해 오후 9시에 근접했다. 게다가 당시 집이 분당이었고 회사는 수원이었기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편도 2시간30분, 즉, 출퇴근시간만 길바닥에서 장장 5시간을 소비했다. 더군다나 마지막 철퇴를 가한 것은 휴일과 주말에 더 자주 회사에 나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 운명은 나에게 요구하고 있었다.
너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라!! 음악을 하려면 제대로 도전해보고 아니면 지금 회사생활에 몰두하라!
정말 쉽지않은 결단의 순간이었다. 이 판단으로 내 인생의 향방이 송두리째 좌우될 수 있으니..
결국 제대로 한번 음악공부를 하러 떠나자라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사실 난 뼈아픈 기억이 있다. 대학 전공을 선택할 때 원래 공부하고 싶었던 건축과 지원이 집안의 반대로 좌절되었던 기억이다. 그 이유는 건축과보다는 기계공학과가 더 취직이 잘되고 안정된 사회생활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였다. 고집을 피우다 결국에는 꺾였다. 그 후 기나긴 방황이 시작이 되었고 내 꿈을
타협해버렸다는 자책감에 대학생활을 고통속에 보냈다.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꿈이 없는 삶은 살아도 사는 게 아니라는 것을
그 때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리고 난 앞으로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을 찾으면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는 날이 선 결심을 하고 또 하고 또 했었다.
그 때 난 딱 2가지를 나에게 물었다.
네가 나중에 이 세상 떠나기 전 눈을 감을 때 이 결단에 대해 후회하지 않을 자신있나?
그리고 네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이 이 것이 맞나?
이 두가지가 다였다. 대답은 Yes. 그럼 하는 거지.
이것저것 계산하고 따졌으면 결단을 내리지 못했을 거다.
미국본토에 가서 음악공부를 하고 싶다는 강렬한 바램외에는 전혀 갖추어져 있는 조건과 상황이 아니었다.
원래 목표로 했던 학교가 있는 곳은 미국에서도 그 중 물가 비싸기로 유명했던 보스톤. 현재 가지고 있는 내 수중의 돈은 퇴직금 포함해서 400만원정도에 불과했다. 도저히 견적이 안나온다. 남다른 생각의 전환이 필요했다.
그래서 고민 고민끝에 내린 결정은 일본행.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아시는 분은 다아시겠지만 일본은 지구상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학비까지 해결하며 유학생활 할 수 있는 흔치않은 나라다.
대학시절 전공 (기계공학)에는 별 관심이 없어 어학(영어,일어)에 좀 투자를 해 두었던 터라 일본에 대한 낯설음은 별로 없었다. 그래서 1년동안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벌어서 그 다음해에 진학하자라는 계획을 세우고 무작정 일본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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