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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뭐든 생각할 때 자연스럽게 요리과 연관시키는 버릇이 생겼다.
“이 음악은 싱거워, 이런 소스를 치면 괜찮겠는데..” “ 저 사람은 너무 짜고 매워.. 물을 좀 타야겠는데?.”
“오늘 날씨는 박하맛이네? “ “ 그녀의 미소는 레몬맛이야” 등등
대학생 2학년 때 대학로에서 연극을 보고 나오다 5000원짜리 점을 본적이 있다. 그 때 점장이 말로는 나와 맞는 직업 중 하나가 레스토랑을 하면 잘할 것이라고 했다. 그 것도 밴드도 연주하고 술과 음식을 파는 카바레 스타일의 레스토랑 말이다.
당시 난 원하는 전공이 아니었던 기계과에 들어와서 한창 고민과 방황을 하고 있던 때였다. 음악 또한 취미로 음악동아리에 들어갔을 뿐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왠 생뚱맞게 레스토랑이냐고 생각했고 사이비 점장이라고 단정지어 버렸다.
하지만, 그 말이 무색하게 대학 2년을 마치고 입대하자마자 취사병으로 빠지게 되었다. 그 후 당시 우리 부대에서 최초로 밴드부가 만들어지면서 내가 대학 다닐 때 음악을 했었다는 이유로 착출되어 나오긴 했지만, 식당에서의 첫 신고식을 아주 톡톡히 치뤘다. 그리고 앞서 이야기했듯이 일본에서도 식당에서 일했고 다시 미국까지 와서 잇쵸에 이르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통틀어 식당에서 일한 순수기간만 거의 4년에 이를 정도다. 그 기간동안 각종 채소,생선, 고기 냄새(때론 쓰레기냄새)에 싸여 나의 혈기왕성한 젊음을 보내야 했다. 지금은 인식이 많이 바뀌었지만 내가 20대 때만해도 주방장이란 남자가 할 일이 못된다고 생각했었고, 깔끔한 것을 좋아하는 내 성격 탓에 힘들고 냄새나고 간혹 지저분하기도 하는 그런 공간이 정말 싫게 느껴졌었다
군대있을 때야 주어진 보직이니 어쩔 수 없었다 치더라도 일본과 미국까지 가서도 상당기간 식당에서 보낸 이유는 먹거리와 돈을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아르바이트를 선택할 때 기왕이면 먹는 것까지 해결되는 곳이 필요했다. 식당에서 일하면 돈도 벌고 또 식비까지 아낄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었다. 그리고 사실 식당이란 곳이 어느 나라에나 늘 아르바이트자리가 비교적 있는 편이라 자연스럽게 식당에서 일하게 되었다.
정신없이 바쁘게 살았던 20대엔 거의 맛으로 식사를 한 적이 없다. 내가 먹을 것을 고르거나 끼니를 때울 때 고려한 선택 기준은 Speed, Cheap, Simple 이었다.
심하게 말하면 거의 생존을 위해서 입안에 먹을 것을 밀어 넣었다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먹는다는 것은 단지 식욕을 채우기 위함이라고 생각했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영양소를 공급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인식,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점차 식당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이 먹는 행위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 나는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잇쵸에 와서 그 전의 인식이 얼마나 일차원적인 생각인가를 깨닫게 되었다.
먹는다는 행위에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먹음으로서 충족되는 것은 식욕뿐 아니라 인간의 다양한 삶이 그 “ 먹는다 ” 는 터전위에서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가까이는 가족에서 시작하여 모든 비즈니스 거래, 남녀간의 만남, 각종 행사, 거의 모든 인간사가 이 먹음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그리고 그 인생을 더욱 원할하게 하고 풍요롭게 도와주는 윤활유 같다는 사실이었다.
식당(주방) 이란 곳은 인간의 오감이 다 느껴지는 곳이다. 그 것도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인간의 온갖 감각을 다 자극할 수 있다. 각종 냄새, 온도, 여기저기서 악기처럼 들리는 요리하는 소리들, 다양한 맛의 감별, 여러 음식과 재료가 창출하는 형형색색 컬러의 향연 등 주방만큼 다채롭게 경험할 수 있게 하는 곳이 있을까?
그리고 이어지는 다양한 손님들과의 만남. 독립영화 같은 수많은 스토리텔링과의 만남이다.
그들이 식사를 하며 나누는 대화, 표정, 패션 등을 관찰하면 수많은 사연들이 스치는 듯하다. 그토록 싫고 지겨웠던 주방 일이 어느 틈엔가 가끔씩은 인간의 오감을 사용해서 어떤 예술작품을 만드는 과정이 아닌가 느껴지기도 했다
볶음밥 만드는 법이다. 일어로 "차한"이라고 하는데 비교적 만들기 쉽고 먹기도 괜찮아서
잇쵸에서 많이 만들어 먹었다. 한 번 따라서 만들어 드셔보시라~~
군대의 취사병시절, 일본에서의 텐동집에서 아르바이트, 마지막으로 잇쵸에서 일해오면서 그토록 싫어했던 식당이 내 유학시절을 뒷받침해주는 가장 튼튼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게다가 그 식당이라는 공간을 통해서 일본을 더욱 깊게 이해하게 되고, 더 나아가서는 시간, 공간, 인간, 삶에 대해서까지 새로운 눈을 뜨게 된 것은 정말 아이러니하다.
사실 지금 글도 식당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쓰고 있지 않은가?
역시 어떤 일이나 사건에 대해서 당시 일희일비할 것이 아니라, 확실한 것은 시간이 지나봐야 그 진정한 의미가 우러나오는 법이다.
난 음악 프로듀서다.
잇쵸에서 일하면서 편곡의 수많은 아이디어가 그 요리를 만드는 과정 속에서 탄생했음을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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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정말 훌륭한 요리사가 될 사람은 동시에 훌륭한 음악가도 될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한다. 신선한 재료를 가지고 적당한 밸런스과 간발의 타이밍이 빚어내는 작품, 고객의 입맛과 기분까지 섬세하게 배려한다는 점에서 요리사와 편곡가, 정말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난 앞으로 좋은 음악을 만들기 위해서 가능한 한 세계 각국에 있는 다양한 맛을 경험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지금도 맛있게 하는 곳을 찾고 있다. 여러분 중에서도 혹시 기가 막히게 맛있게 하는 곳을 알고 계시다면 가차없이 연락주시기 바란다.
한 번 사는 인생, 저 세상으로 떠나기 전에 먼저 다양한 미각의 여행을 떠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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