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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4/26 [준짱의 잇쵸스토리] 다양한 음악이 숨쉬는 곳.. 잇쵸 그리고 보스톤
- 2007/04/11 [준짱의 잇쵸스토리]잇쵸를 만나기까지 III - 일본에서 마지막 스트립쇼
보통 일반인들은 재즈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분위기좋은 재즈클럽에서 감미로운 재즈음악의 선율위로 비치는 섹시한 여가수의 입술, 매혹적인 색소폰의 속삭임, 그리고 붉은 색 와인 한 잔..
수많은 영화에서 다루는 재즈씬이란 보통 그랬다.
하지만, 우리들은 재즈를 공부하러 왔기에 그런 달콤한 재즈보다는 1920년대 뉴올리언즈 재즈에서부터 최근 실험적인 퓨젼재즈까지 다양한 재즈를 듣고 있었다. 따라서, 잇쵸에 걸리는 재즈도 실로 각양각색이었다.
그 때 일하는 잇쵸멤버가 마음에 드는 재즈를 틀었기에, 재즈에 관심이 없는 잇쵸멤버들은 때로는 J-POP을 틀자고
작은 실랑이가 오고 가기도 했다.
잇쵸의 뮤직박스다. 카셋트 플레이어위에 검은색 CD 플레이어가 놓여져 있다. 상당히 고물이었지만 내가 일하는 동안만큼은 한번도 고장이 난 적은 없었다.
재즈를 틀건 J-POP 을 틀건간에 꽤나 노동강도를 요했던 잇쵸에서 이렇게 동료가 서로 번갈아서 자기가 좋아하는 다양한 아티스트의 CD를 틀면서 나누었던 음악이야기는 정말 하루의 피로를 씻어주는 소중한 청량제였다.
주인장도 음악을 좋아해서 요요마 가 잇쵸에 와서 우동을 먹고 간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곤 했다.
요요마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첼리스트로서 중국인이다. 보스톤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위해 왔던 요요마가 일본식당가를 찾았는데, 그 때 잇쵸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요요마가 우동을 주문해서 주인장은 너무나 좋아했던 아티스트인지라 본인이 직접 우동을 만들어 접대했는데 너무 흥분하여 만들 때 손이 다 떨렸다고 한다.
식사 후 맛있다고 하며 노트에다 사인을 해주었는데 자기가 아주 소중히 여기는 보물 중 하나라고 했다. 정말인가 했더니 나중에 주인장 집에서 파티할 때 놀러가서 보니 액자에 넣어 거실에 보기좋은 자리에 걸려있었다.
요요마 & 탱고의 제왕 피아졸라
요요마 (Yo Yo Ma) - 타이완계 프랑스의 첼리스트
1955년 파리에서 중국인 부모 사이에 태어나 4세 때 아버지로부터 첼로를 배우기 시작하여 1962년에는 줄리어드학교에서 공부했다. 이 후 하버드대학교 졸업생으로 명예박사학위를 받고 50장에 가까운 앨범을 내놓은 가운데 무려 14회나 그래미상을 수상하였다.
내가 공부한 음악학교에서 멀리 떨어져있지 않은 곳에 보스톤 심포니홀이 있었다. 이곳에는 아까 언급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보스톤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있었는데 그 곳의 중심에는 1970년부터 2002년까지 무려 29년동안이나 상임지휘자로 활동했던 세이지 오자와라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본인이 있었다. 지금은 건강상의 이유로 은퇴했지만, 당시에는 인기절정이어서 가즈오와 보러 간적이 있다.
보스톤 심포니 오케스트라 Box Seats 의 경우는 80~100달러로 상당히 고가인 편이지만 잘 알아보면 싸게 티켓을 구할 수 있는 방법도 있었다. 뒷자리나 가장자리 경우 간혹 팔리지 않고 남는 표가 있었는데, 공연당일 러쉬티켓이라하여 아주 싸게 팔았다. 아침 일찍가면 그 티켓을 구입하려고 길게 늘어서있는 사람들을 쉽게 볼수 있었다. 우리도 다행히 구입할 수 있었는데 10~20달러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보스톤 심포니 오케스트라 & 오자와 세이지
보스톤 교향악단(Boston Symphony Orchestra)은 매사추세츠 주의 주도 보스턴을 본거지로 하는 미국의 대표적인 관현악단이다.
1881년에 사업가였던 헨리 리 히긴슨이 사비를 들여 창단했으며, 1973년에는 역대 최초의 아시아인 상임 지휘자로 오자와 세이지 를 초빙했다. 오자와는 29년간 직책을 역임해 악단 사상 최장 재직 기록을 갱신했고, 2004년에 사임한 뒤에도 계관 음악 감독의 직함으로 종종 객원 출연하고 있다. 오자와의 후임으로는 제임스 레바인이 첫 미국인 상임 지휘자로 취임해 화제가 되었으며, 현재까지 재임 중이다.
설립 초기에는 보스턴 음악당을 주요 공연장으로 사용하고 있었으나, 1900년에 신축된 보스턴 심포니 홀로 옮긴 뒤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다. 심포니 홀은 미국 뿐 아니라 전세계 클래식 공연장들 가운데 가장 이상적인 음향 조건을 지닌 곳으로 유명하다.
영화음악도 자국 작품 위주로 녹음하고 있으며, 쉰들러 리스트와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OST 녹음에도 기용되었다.
특히, 가즈오는 그런 정보에 정통해서 어떻게 하면 할인티켓을 구할 수 있는지, 공짜로 하는 좋은 공연이 언제 어디서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에게 물어보면 빽빽히 적어둔 수첩을 들춰보며 순식간에 몇몇 좋은 공연을 추천해주어 아주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가즈오와 홀에 들어가보니 이층 발코니 맨 뒤쪽이었는데 다행히 소리는 별 지장없이 잘 들렸다. 세이지 오자와의 열정적인 지휘로 연주가 끝나고, 일어나 둘러보니 보스톤의 부자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모두 모인 느낌이었다. 아주 우아하게 차려입으시고 리셉션 홀에서 서로 인사하며 공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보스톤에서 봄이나 여름이 되면 여러가지 축제를 하는데 그런 경우 유명 재즈 아티스트의 공연이 무료로 올려지는 경우가 꽤 있었다. 퓨젼재즈로 우리나라에도 상당수 팬을 확보하고 있는 포플레이(Four play), 라틴재즈의 살아있는 전설 티토 뷰엔테 (Tito Puente) 등도 잔디 야외 공연장에서 무료로 보았다.
라틴음악의 제왕으로 맘보와 라틴재즈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50년동안 이 분야의 음악을 해오면서
매우 큰 인기를 누렸다. 그 유명한 Simpsons 에서도 그의 캐릭터가 등장한다.
그 야외공연장의 잔디위에 수많은 사람들이 소풍오듯이 하나 둘씩
자리잡고 거의 채웠을 때 맘보킹 아저씨가 다이나믹한 퍼커션연주와 함께 등장했다. 그의 현란한 팀발레연주에 맞춰 수많은 사람들이 각기 춤을 추며 즐거워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안타깝게도 그의 공연을 보고 얼마있지않아서 2000년 5월 31일부로
77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마일즈 데이비즈의 생존공연을 못본 대신이 그의 공연을 본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보스톤에는 이렇게 계절에 따라 축제기간에 유명아티스트의 무료공연이 이루어질 때가 있다. 한국에 오면 최소 티켓값이 10만은 호가할 아티스트의 공연을 공짜로 그것도 장르별로 골라볼 수 있다는 건 쏠쏠한 재미다.
그 밖에도 뉴욕에 블루노트가 있다면 보스톤에는 레가토바가 있었다. 보스톤을 대표하는 재즈바로 유명 재즈아티스트의 공연이 거의 매일 있었다. 티켓값도 10달러~30달러 사이였는데 이 정도의 가격으로 말로만 듣던 전설적인 재즈아티스트의 공연을 아주 손쉽게 볼 수 있는 것은 음악학도로서 정말 행운이었다.
곤잘로 루발카바, 마이클 브레커, 추초 발데스 , 맥코이 타이너, 칙코리아, 등 레가토바에서 만난 재즈아티스트는 상당히 많다. 좀 부지런하게 티켓팅을 하면 좋은 자리를 얻어 아주 가까이서 그 들의 연주를 볼 수 있었다. 곤잘로 루발카바 의 경우는 손만 뻗히면 그의 몸이 닿을 정도의 거리에서 그의 공연을 보았다. 그의 땀, 열기, 숨결 하나하나가 느껴질 정도였다.
이렇게 잇쵸의 멤버들과 음악이야기를 하며, 함께 공연도 보러가며, 그리고 같이 연주하면서 그렇게 잇쵸에서의 나날이 음악이란 색다른 소스가 곁들여져 풍부한 맛을 더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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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난 일본에 간지 불과 3개월 만에 내 계획에 대해 궤도수정을 해야 했다. 일본은 음악을 공부하기에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음에는 틀림없었지만 결정적으로 내가 마음에 드는 음악학교가 없었다.
사실 원하는 학교는 미국에 있었다. 그러나, 물가 비싸기로 유명한 보스톤에 위치하고 있었고 더군다나 사립학교였기에 경제적인 이유로 일찌감치 포기하고 일본에 왔던 것이다.
결정적으로 그나마 갈만 하다고 판단되었던 일본음악학교의 학비가 원래 내가 지향했던 학교의 학비와 별반차이가 나지않는 것을 발견하고 나는 다시 중대결단을 내려야 했다. 길게 고민할 여유가 없었다. 짧지만 고통스러운 심사숙고 끝에 바로 결정을 내렸다.
"그래 원래 가려고 했던 미국으로 가자! 일본에서 벌어 미국에 가서 공부하는 거야!"
소위 발상의 전환이었다.
그렇게 방향이 정해지자 낮에는 일, 밤에는 또 토플준비로 단 1초도 허비할 시간이 없다는 각오로 더욱 독하게 나를 몰아쳐야 했다.
1년 내에 원하는 학교에 준비해서 합격을 해야하고 또 필요한 학비까지 마련해야 했다.
만약 둘 중 하나라도 충족이 되지않으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국제미아가 될 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이런 불안한 생각이 고개를 들려고 할때면 더욱 나를 정신없이 몰아치며 일에, 또 공부에 몰입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 흔한 스시 한 번 못 먹어봤고 온천은 커녕 센또(銭湯せんとう - 일본식 목욕탕)도 한 번도 못 가봤다.
일본식 목욕탕인 센또를 보여주는 영상이 있길래 올려본다. 센또의 구석구석을 잘 보여주고 있다.
내부가 한국의 옛날 목욕탕하고 비슷한 것 같은가? 지금은 찜질방에 밀려서 맥을 못추고 있긴하지만..
그렇게 도쿄에서의 1년 남짓한 시간은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과 기대가 묘하게 교차하는 가운데
어느새 훌쩍 지나갔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한국에 귀국해서 보낸 8년에 가까운 세월보다 그 짧았던 1년이 더욱 진하게
내 기억 속에 각인되어있다. 과거가 본인의 꿈을 위한 여정으로 인한 고통이었다면 그 고통이 심했을 수록 더 멋지게 기억되는 법이다. 나 또한 그 때의 힘들었던 일들이 지금은 사실보다 예쁘게 채색되어 가끔 불현듯 영화필름처럼 떠올라 입가에 미소를 짓게 만든다.
1일을 365 X 10년 = 3650번 변화없이 반복하는 10년의 세월보다 어쩌면 마음을 다한 정면승부로 보낸
한달의 기간이 평생 내 기억을, 내 인생을 더 강렬하게 지배할 수 있는 것이다.
날카로운 첫키스의 추억처럼..
난 바라던 대로 고대하던 원하는 미국의 학교로 입학이 결정되었고 원하는 학비도 일정액 이상 축적했다.
가장 오랫동안 일했던 일본식당에서의 아르바이트를 끝냈을 때 점장이 마지막 작별선물이라면서 나를 신주쿠에 데리고 가서 대낮부터 스트립쇼를 진하게 보여주었다.
점장은 헤어질 때 “ 미국가서 이 스트립쇼처럼 화끈하게 성공하길 바래” 라고 장난기어린 미소로 날 보내주었다.
대충 이렇게 컨셉을 정해놓고 그 것에 맞는 복장과 음악으로 퍼포먼스를 한다.
10개 이상의 다양한 컨셉으로 쇼를 진행했다. 보통 처음에는 얼굴이 별로 안생기고 스타일이
나오지않는 스트립걸로부터 시작해서 막을 거듭할 수록 얼굴이 예뻐지고 몸매도 좋아진다.
맨 마지막에는 그 극장을 대표하는 스트립걸이 나와서 장식한다.
각자 쇼가 끝난 후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들고 나와 손님에게 자신의 나신을 찍게 하고 돈을 받는다.
그리고 자신의 출연한 스트립 비디오도 함께 판매를 한다.
드디어 그동안 나를 끈질기게 얽어매었던 주변의 참견과 기대, 세상의 강요, 체면따위를 훌러덩 벗어던지고 미국에 가서 있는 그대로의 내 알몸을 보여줄 준비가 된 것일까?
보여줄만한 스트립쇼는 안될지언정 맨 몸으로 화끈하게 미국과 맞장 떠 부딪혀보리라 각오를 하고
보스톤행 비행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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