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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12/07 [준짱의 잇쵸스토리] 잇쵸의 전사들
“빵빠라 빵~~” “둥둥둥둥~~”
“적군이 쳐들어온다!” “돌격하라!!”
난 잇쵸에 갈 때마다 마치 전투에 나가는 기분이었다. 일할 때의 팽팽한 긴장감, 스피드한 몸놀림, 런치타임이나 디너타임때 물밀듯이 들이닥치는 손님들을 단 4명이 해치워나갈 때 마치 얼마 전에 상영했던 300 이라는 영화에서 등장하는 백만대군인 적군을 일사불란하게 처치하는 스파르타군 처럼 나 자신을 느낄 때가 있었다.
더군다나 신참이 없이 2년 가까이 잇쵸에서 일한 소수정예들과 함께 배정이 된 날은 정말 일할 맛이 났다. 빗발치는 주문의 외침에 따라 수많은 재료과 연장들이 날아다니며 고객이 원하는 작품이 속속 빗어졌다. 생선를 굽는다는지 굴을 튀겨야 한다든지 재료에 따라 일정시간이 꼭 필요한 메뉴를 제외하고는 거의 1분 안에 승부를 냈다.
심지어는 단골 손님의 자주 시키는 메뉴를 미리 알아두었다가 웨이트리스에게 주문하는 손님의 입 모양만 보고 번개처럼 후다닥 만들어서 웨이트리스의 외치는 메뉴의 이름이 끝나기도 전에 요리를 내놓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그렇게 하기까지 그 좁은 공간 안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는 가운데 칼에 베이고 기름에 데이는 등 꽤 쓰라린 훈련과정이 필요했다. 처음 3개월은 매우 힘들다가 6개월째는 일이 조금 손이 잡히기 시작하며 대략 1년쯤 일하면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고 그 동안 일한 시간에 따라 다르지만 적응이 되어 그다지 힘들지 않게 된다.
그러다가 1년 반이 지나면 글쎄.. 손에 연장이나 재료가 쫙쫙 붙는다고나 할까?
처음 3개월 동안은 팔뚝과 손에 반창고가 수두룩했다. 팔뚝은 주로 데어서 난 상처들이고 손은 베어서 난 상처들이었다. 잇쵸가 워낙 좁고 할 일이 많아 바삐 움직이기 때문에 내 몸의 움직임이 적절한 행동라인에 자리잡지 못하면 여기저기서 부딪히고 찧이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래서 잇쵸에는 항상 반창고서부터 연고까지 다양한 약이 들어있는 구급약상자가 구비되어 있었다.
베인 곳에 반창고를 붙일 때면 마치 전쟁을 치르다 부상을 당하여 치료를 받는 기분이 들기도 했었다.
난 한 때 스파르타식을 동경한 적이 있다. 20대 시절, 스파르타식으로 내 자신을 몰아칠 때
느꼈던 고통. 그리고 그 것이 오히려 쾌감으로 다가왔던 기억. 그 수많은 기억이
나를 단련시켜준 것 같다. 젊을 때 스스로 몸의 한계를 극한까지 경험하는 것은
인생 전반에 걸쳐서 매우 소중한 체험 중 하나라고 나는 확신한다.
고객감동과 매출상승이 곧 승리이다.
신입 때 나를 긴장하게 만든 것은 한꺼번에 손님이 몰아닥칠 때, 아직 익숙치 않은 메뉴이름이 백만대군의 페르시아군이 한꺼번에 쏘아대는 화살떼처럼 내 귓가 주변을 어지럽게 날며 맹공격을 할 때였다. 메뉴를 놓치는 때도 많았다. 외국인이라서 천천히 불러주는 것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잇쵸는 어차피 팀웍으로 일이 진행되기 때문이었다.
일본인들이 가장 죄악시 여기는 것은 소위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는 것이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 잇쵸 초창기에는 늘 귀에 쫑긋 안테나를 세우고 온 몸에는 초민감 센서를 구석구석 매단 것처럼 초긴장하고 일에 임할 수 밖에 없었다.
사실 난 군대 있을 때 6개월가량 취사병으로 일한 적이 있다. 그 후 밴드부와 수송부로 옮겨져서 남들보다 다양하게 군생활을 한 편이다.
그런데 그 때 취사병으로 일했을 때가 다른 보직보다 상당히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잇쵸에서 일의 강도는 군대에서 취사병으로 일했을 때를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군대에서야 메뉴가 많은 것도 아니고 그냥 매일 편성된 메뉴에 따라 만들면 되지만 잇쵸에서는 50개나 되는 메뉴를 소화해야 했다.
일본을 제대로 알기 전에는 일본 남자들이 군대에 안가는 것에 대해 부러움에 찬 눈으로 보곤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다지 부러워하지 않는다. 왜? 일본사회 자체가 군대같으니까! 한국남자는 눈 딱감고 2년만 갔다오면 되지만, 일본남자는 사회에서 평생 군대생활을 해야 한다.
서로 잘 모르는 남자들이 군대에서 만나 같이 힘든 일을 경험하면서 동기애가 생겨난다. 마찬가지로 잇쵸에서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의 강도와 다 같이 힘을 합쳐 일할 수 밖에 없는 시스템은 매우 두터운 동지의식을 길러주었다.
전체적으로 개개인이 일한다는 느낌보다는 하나의 바퀴가 굴러가듯, 한 호흡을 가지고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사물놀이를 연주하듯이, 꽹과리, 장구, 북, 징 이 한데 어우러져 신명나게 한바탕 놀았다고나 할까?
준짱의 1분 노트>>
일본의 회사에서 일할 때는 사적인 것이 전혀 용납이 안된다. 사적인 전화에서부터 담배피우는 것 까지 업무와 관계없는 행동들은 금지되어 있다.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 대해서는 혀를 내두를 정도로 철저히 완벽을 기한다.
하나의 실수도 용납이 되지 않는 분위기다. 그래서 한국에서 오래 생활하다가 일본에 돌아간 내 일본친구들은 한국의 느슨함(?)과 실수에 대한 관대한 포용력(?)이 그립다는 말을 자주 한다.
말하지 않았는 가? 일본 사회는 그 자체가 군대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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