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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13 17:54

[준짱의 잇쵸스토리] 음악을 보고 듣는 한국인, 음악을 듣고 보는 일본인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자기 품위에 맞는, 자기 인생의 색깔에 맞는 음악을 알고 즐길 줄 안다면

건조하고 맛없는 자기 삶에 달콤 쌉싸름한 소스 를 치는 격이 될 것이다.

 

난 음악공부를 위해 한국을 떠났다.  그 후  일본에서 또 미국에서 살면서 꼭 확인해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그 나라에서는 어떻게 그토록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왕성하게 만들어질 수 있었는지?  어떻게 세계를 리드하는 음악이, 또 그 거대한 음악시장이 탄생할 수 있었는 지 궁금했다.

 

토쿄 라이브클럽에서 보스톤을 거쳐 재즈로 유명한 뉴욕 블루노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클럽과 스튜디오를 방문했었다라이브클럽의 음향, 스테이지 또 홀의 크기 등을 꼼꼼하게 비교 분석했다. 그리고 스튜디오에 가서는 그 들이 어떤 장비를 쓰고 있는 지, 얼마나 훌륭한 작업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지도 스파이처럼 은밀하게 염탐하기도 했다.


한국에선 꿈도 꾸지 못할 유명 아티스트의 공연도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적지 않게 보았다.  그리고, 내 모교에서 음악공부를 하면서 또는 교수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뭔가 그 해답을 듣고자 했었다.   그 때마다 발견한 늘 새로운 답변은 당시는 맞는 것 같았지만  결국 나의 궁금증을 속시원히 긁어주지 못했다. 그 이유가 다양하여 한 두 마디로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난 꼭 이거다! “ 싶은 한 가지 말로 정의를 내리고 싶었다.

 

그런 유레카의 순간은 보스톤의 대학를 졸업하고 뉴욕에 가서 사는 동안 나에게 다가왔다.

그 것은 음악학교의 수준도, 스튜디오의 빵빵한 장비도, 라이브클럽의 훌륭한 음향시설과 크기 때문도 아니었다.

 

그 들의 예술을 즐길 줄 아는 마음, 그 거 하나였다.

 

어딜가나 넘치는 음악과 공연,  또 돈이 있으나 없으나,  예술을 많이 아나 모르나에 상관없이 나름의 상황에서 예술을 즐기는 여유, 또 그런 라이프 스타일. 

의외로 평범하고 너무 쉽게 그 해답이 찾아져 싱겁기도 했다.   하지만,  진리는 심플하다고 정말 그랬다.

 

인도네시아 친구를 따라 일요일에 가끔 미국인 교회에 가곤 했다. 그 친구가 그 교회에서 어린이성가대를 지휘하기 때문이었다.  그 곳에서 만난 미국인 주부가 있었다.  그녀는 넉넉하지 않은 가정의 주부였다.

하루는 내게 1년 간 꾸준히 아르바이트해서 모은 돈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공연을 보러 간다며 자랑했었다.  

콘서트의 감동을 미리 앞서 상상한 탓인지 발갛게 상기된 볼을 두 손으로 감싸며 좋아했다.

그녀는  올해도 콘서트에 가서 받은 감동과 영감, 에너지로 또 1년을 살아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일본에는 1년 밖에 살지 않았다. 그러나, 그저 주위에 음악이 있으면 듣는 평범한 사람에서 광적으로 좋아하는 음악 오타쿠에 이르기까지 정말 다양한 일본인을 만났다.   그 때 일본인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CD를 살 때 2장을 사는 것이 드물지 않음을 알았다.  한 장은 감상용 또 한 장은 보관용이다.  그 만큼 그 음악을 소중히 여길 줄 안다.

 

아티스트에 대한 예우도 해준다.  귀족을 예우하는 것 같다. 


연예인에게 열광하는 것이 아닌, “예술가를 예우해주는 다수의 청중이 존재한다.    조그만 라이브클럽에서 연주하는 이름없는 인디밴드라 할 지라고 한 번쯤은 진지하게 들어줄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 중에 자신을 정말 감동시키는 음악이 있으면, 그 밴드가 소위 무명이라고 해도 그 앨범을 사주고 그 들의 공연을 보러 가준다.   물론, 제 값을 지불하고 말이다.

 


일반적으로 일본 대중이 음악을 이해하는 수준은 대단히 높다.


우리나라가 6.25 사변을 겪을 때 일본은 재즈가 대중적으로 유행했던 나라다.  그런 다양한 음악들을 들어온 오랜 기간이 있었기에 비교적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무슨 음악을 좋아하는 지 정확히 알고 있다.  나름의 판단 기준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본인이 선택한 아티스트는 정말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이고, 아티스트이다.  따라서 그 뮤지션이 잘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도와준다.

 

우리의 현실은 어떨까?  공짜로 공연 보는 것을 당연히 생각한다.  표 없으면 왠만 해서는 보러 가지 않는다.   수많은 공연의 티켓을 공짜로 얻으니 소중한 것을 모른다. 


주로 음악을 듣기위해 가기보다는 보러간다.  물론, 그 것이 현장에서 보는 라이브의 매력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문제는 시각에 과다하게 치우쳐 청각에 별로 의지하지 않는 데 있다.  자극적이고 화려하게 시각을 만족시켰으니 다음 청각에 대해서는 왠만하면 용서해줄 수 있다.

주로 시각적 만족도에 따라서 음악을 평가한다.  많은 가수들은 외모를 차별화하고 비쥬얼이 과감하게 특징적이다.  거기까지는 좋다.
 

그러나, 그 것이 음악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외형은 강렬한 개성을 소유하고 있는 뮤지션이 넘쳐 흐르지만, 눈을 감고 그 들의 음악을 들어보면 그 음악이 그 음악이다.  하나의 아티스트의 다양한 앨범 수록곡을 듣는 것 같다.

 청중들은 오히려 음악 자체보다는 그 가수 자체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 애인유무, 좋아하는 이상형에 더 많은 관심이 간다.

 

일본은 보기에 앞서 우선 듣는다.  우선 청각을 만족시키면 그 다음 시각과 연결시켜 그 아티스트에 대한 차별성을 인식하고 팬이 될지 말지를 결정한다.  일단 팬이 되면, “ 바닷가에서 본인이 선택한 조약돌을 평생 갈고 닦는 마음으로 쉽게 버리거나 바꾸지 않고 꾸준히 그 아티스트를 지지해준다.


이런 팬을
200명만 확실히 가지고 있다면 그 아티스트는 평생 음악할 수 있다. 그 들이 꾸준히 공연도 보러 와주고 앨범도 사주기 때문이다. 덧붙여 일본은 저작권도 철저히 보장되고, 창작과 공연에 따른 여러 수익과 권리를 반드시 챙겨주고 보호해 주는 나라다.


따라서 꼭 뜨지 않아도, 지금 트렌드에 맞는 음악을 하지 않고 자기만의 개성있는 음악을 해도 충분히 뮤지션으로서 대우받으며 음악생활을 할 수 있다 


생활이 풍족하지 않아도 원하는 음악만을 하면서 계속 음악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뮤지션으로서 행복한 삶이다.

더욱 더 자신만의 음악에 매진한다.   그런 뮤지션이 많으니 자연스럽게 다양한 음악이 발달할 수 밖에 없다.

한국처럼 생활비를 벌기 위해, 그리고 소위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음악을 버리고 대중취향의 음악으로 쉽게 변질되지 않는다.  그러기에 개성있고 창의력있는 음악이 생산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반면, 대다수의 한국 청중들은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음악이 뭔지 모른다.  나에게 맞는 음악, 좋은 음악보다는 요즘 뜨는 음악이 뭐냐에 더 많은 관심이 있다. 그저 화끈한 비쥬얼적인 이미지와 거기에 적당히 걸맞는 노래만 있으면 된다.


TV
나 라디오에서 그 음악이 줄기차게 들리고 사람들의 입에 그 가수의 이름이 거론되기 시작하면, 그 것이 바로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이고 아티스트이다.   
R&B 발라드가 대세이면 소몰이창법으로 도배를 해대고, 댄스가 유행이면 TV, 라디오 그 외 온갖 매체를 통해 무차별로 귓가에 폭격을 해댄다.


일반 대중은 안들을 재간이 없는 것이다.  음악에 대한 자기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획일화된 하나의 곡을 이렇게 무자비하게 일방적으로 듣게 되면, 인간이 가지고 있는 반복성에 따른 세뇌로 그 곡이 머리 속에 각인된다. 

어린이같이 유치찬란하고 시덥지 않은 음악도 그 것을 모르면 유행에 뒤떨어지는 것 같아 그 곡만 나오면 따라 부르고 그 가수의 사생활이야기를 하면서 괜히 아는 체 한다.

 

그러다보니,

더 자극적이고 새로운 것이 튀어나오면,  언제라도 바로 그 쪽으로 시선을 돌릴 준비가 되어 있다
. 



물론, 음악 자체보다는 시각적 만족도에 따라서 말이다.  한 물간 가수들은 순식간에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새로 등장한 신인 가수들은 선배들의 족적을 충실하게 답습한다.  다들 기어 중립상태에서 열심히 악셀만 밟아대고 있다.

 

미국이나 일본의 음악을 들으면서, 또 그 나라 쳥중들을 보면서 느낀 것이 있다.  


그 들은 자기들만의 문화를 축적해나가고 있다는 생각이다.  반면에 한국의 대중음악은 쌓여져 가기보다는 시대에 따라 단절적으로 소비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을 감출 수 없다.


현 한국의 대중음악은 딴따라 느낌에서 자유스럽지 못하고, 획일적이고 인스턴트식이다. 

역사 속에 축적이 되어가는 음악의 형태를 만들지 못한다.  세계적인 유행에 따라 미국과 일본음악을 요리조리 짜집기하고 얼치기로 후다닥 음악을 만들어 한 몫하려는 엔터테인먼트계 사장님들이 아직도 수두룩 하다.   늘 거론되는 표절의 문제들..  하지만 업자들은 개의치 않는다.  표절해서 걸려도 원작자가 소송하면 소송비나 소송으로 걸리는 시간 때문에 기피한다는 상황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설령, 그렇게 한다 할지라도 이미 해먹을 만큼 다 해먹은 상태가 되기에 배째라 하는 태도다.

 


따라서 뮤지션은 뮤지션데로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구축해 나가기 힘들고 청중은 또 청중데로 철새처럼 둥지를 못틀고 계속 
떠돌게 된다.    자신의 영혼을 위로받고 마음을 치유하는,  진정으로 나와 코드가 맞는 음악을 만나기 어려운 것이다.

 


과연, 가까운 시일내에 눈이 아닌 귀로 듣는 음악을, 또 기꺼이 귀를 열고 들어주는 청중을 만나기란 불가능한 것일까?


 

그 해결의 열쇠는 아티스트, 청중들, 그리고 우리 모두의 몫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음식만큼은 정확히 아는 것처럼,


자신의 취향에 맞는 음악, 예술도 제대로 알고 멋지게 즐길 줄 아는 날이 빨리 왔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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